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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기는 공부, 유무념






유무념 대조공부를 하다보면

마음이 잡히어 마음의 표준이 서지고

마음이 법에 길들어져 산 마음, 밝은 마음이 되어

삼라만상이 과거에 보던 삼라만상이 아니라

나에게 법문을 설하는 부처님으로 보이고

나중에는 마음에 힘이 생기며 중심이 잡혀

경계와 내가 둘이 아니어서

평안함과 고요함이 그대로 일관되더라.


-대산종사 법문집-

▶유무념이란?


유무념은

모든 일을 대하여

유념으로 처리한 것과

무념으로 처리한 번수를 조사하여

기재하는 것입니다.


유념은

하자는 조목과 말자는 조목을 정하고

그 조목에 대하여

주의심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을 말하고


무념은

정한 조목에 대하여

주의심이 없이

생각하고 행동한 것을 말합니다.


유무념은

생활 속에서

경계를 대할 때마다

언제나

스스로 마음을 챙기게 하는 방법으로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완전히 전체적으로

깨어있게 하는 공부,

온전한 생각으로 몸과 마음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공부입니다.


▶어떻게 조목을 잡을까요?


(ㄱ) 가까운 곳에서부터 주변의 일부터

대산종사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유무념 공부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주변의 일부터 유무념을 잡아야 한다. 유무념이란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일에서부터 건수를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요원한 공부 표준을 잡거나 자기와 무관한 일 등을 건수로 잡으면 헛 인생이 될 것이다. ”

자, 이제 어디서부터 조목을 잡아야 할지 아시겠지요?


(ㄴ) ‘하자는 조목’과 ‘말자는 조목’에 대하여···

하자는 조목과 말자는 조목은 내가 생각을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나의 상태를 신앙하지 않고 자신을 바꾸고 싶은 마음에 조목을 정하게 되면 그 조목이 자신을 감시하고 괴롭히는 조목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삶 속에서 자신을 간섭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신앙하다보면 구속으로 느껴져온 ‘하자는 조목’과 ‘말자는 조목’이 더욱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고 싶다. 이것은 말고 싶다.’의 주의하는 신앙을 키우는 공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자는 조목과 말자는 조목은 내가 어떻게 해 보려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와지는 자기 사랑 조목인 것입니다.


▶조목을 잡은 뒤 어떻게 기재하나요?


처음에는 일이 잘 되었는지 못 되었는지

‘취사하는 주의심을 놓고 안 놓은 것’으로

번수를 계산하는 것입니다.


※주의심: 경계를 대해서 하기로 한 일과 안 하기로 한 일을            경우에 따라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실행하는 마음.

          -[정전] 제3 수행편 정기 훈련법-

※조사(調査): 뚜렷하게 알기 위하여 자세히 살펴보거나

     찾아 보는 것. 결국 얼마나 주의심을 가지고

     취사를 했는가를 자세히 살펴보거나 찾아보는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대종경] 수행품 1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곧 심지에 요란함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대조하고 또 대조하고 챙기고 또 챙겨서 필경은 챙기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되어지는 경지에까지 도달하라 함이니라.”

이 말씀은 심지에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있으면 안된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심지에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내 마음을 살피는 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

즉 경계를 대할 때마다 나의 마음을 세밀히 잘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핀 마음의 번 수를 사실 그대로 기재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공부가 깊어 가면?


▷처음에는

처음으로 유무념 공부를 시작하는 분의 경우입니다.

글자 그대로 처음에는 일이 잘 되고 못 되고에 상관없이 다만 취사하는 주의심을 가지고 한 것은 유념, 취사하는 주의심을 놓고 한 것은 무념으로 기재하는 것입니다.


▷공부가 깊어가면

유무념 공부를 통해서 취사하는 주의심에 대한 훈련이 잘 되었을 때, 자신을 전체적을 믿는 마음이 익어졌을 때 일이 잘 되고 못된 것을 번수를 계산합니다.


우리는 처음으로 하는 공부이니 우선은 나의 눈 높이에 맞게

“처음에는····”공부에 힘써 봅시다.

“공부가 깊어가면···”공부는 곧 우리가 하게 될 예고편입니다.



▶마음만 보다가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요?

일의 경과는 무시하고 마음만 보라는 것인가요?


“경계에 지더라도 속지는 않는다.”

이 말씀은 대산종사의 법문입니다.

경계에 지고 이기고, 잘하고 못하고, 크고 작고, 빠르고 늦고에 관계없이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는 마음을 공부하자는 말씀입니다.

공부길만 잡아 나가면 공부심이 일관되어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 되어지는 공부인이 되어집니다.



대종사께서 말이 수레를 끌고 가는 것을 보시고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수레가 가는 것이 말이 가는 것이냐 수레가 가는 것이냐? 」「말이 가메 수레가 따라서 가는 가나이다.」

「혹 가다가 가지 아니할 때에는 말을 채찍질하여야 하겠느냐, 수레를 채찍질하여야 하겠느냐?」

「말을 채찍질 하여야 하겠나이다. 」

「그대의 말이 옳으니 말을 채찍질하는 것이 곧 근본을 다스림이라, 사람이 먼저 그 근본을 찾아서 근본을 다스려야 모든 일에 성공을 보나니라. 」


내 마음이 어떻든 일이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일이 잘 못 될까봐 마음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십니까? 내가 하는 일을 비롯하여 이 모든 것이 마음의 움직임에 따르기 때문에 바로 근본을 다스리자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일의 잘 잘못의 결과에 집중되어 있는 마음이 일을 만남에 따라 그 일어나는 나의 마음에 관심을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이 불안하시다구요?

그렇다면 먼저 결과에 붙잡혀 있는 그 마음을 가지고 유무념 공부를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유념은 좋은 것?

  무념은 나쁜 것?


No!

상시 일기를 기재하면서 자칫 유념은 잘한 것. 무념은 잘못한 것이라고 하여 결과에만 중점을 두어 늘 유념해야 공부를 잘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각오하고 다짐하는 일기를 쓰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즉 응용하는 재미보다 똑같은 틀에 맞춰 쓰는 일상성에 빠져 자기 변화는 어렵고 구속과 부담을 주는 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념인가 무념인가를 간섭하는 것이 아닌 유념인가 무념인가를 조사 기재하는 원리를 알고 하면 경계에 져도 공부요, 이겨도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알고 취사하는 주의심으로 하면 유념을 해도, 무념을 해도 다 재미있는 공부가 되니 우리는 상시 일기를 통해서 취사하는 주의심을 챙겨 자성을 떠나지 않고 깨어있는 공부를 하여 어떻게 해도 재미를 느끼는 공부로 유(有)공부가 아닌 묘유(妙有)공부, 공(空)공부가 아닌 진공(眞空)공부를 하여야 겠습니다.

※유무념 공부를 해보니1


‘내 마음 바라보기’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어떤 마음인지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이제까지 나는 일어나는 마음을 볼라치면 얼른 그 마음을 피해 이리 눈을 굴리고 저리 도망가고 내 마음을 피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내 마음을 만나기 싫었나 보다.

  내가 내 마음을 바라보지 않고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나는 마음이 일어난 것을 보았으면 유념, 마음을 보지 못하고 조금 늦게 알았으면 무념하여 유무념 시계를 눌렀다.

그렇게 해 보니 내 마음에서 어떤 마음이 일어나는지 정말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내 마음을 바라보기를 이틀정도 하니 내 마음에서 어떤 마음이 일어나는지를 볼 수 있었고 이제 일어나는 마음을 다 누르려 하면 번수가 너무 많아지니 조금 선별을 하여 걸리거나 끌리거나 싫어하는 마음, 피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유무념 시계가 바빠지고 있다.

  다만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를 알아두기만 하여도 이미 큰 공부임이 느껴진다.

  알았을 때 그때가 이미 마음을 챙기는 때이기 때문이다.

  동정간에 끊임없이 활용되는 공부, 깨어 있는 공부, 나의 삶을 사는 공부를 하게 되니 기쁘다.

지금 이 경계에서 순발력 있는 공부를 하게 됨에 감사드린다.

상시 일기가 없었다면 아휴 끔찍해라~

유무념 조목 : 내 마음 읽기 (있는 그대로 읽어주기)

예) 3월 3일 : 유15 무3

        4일 : 유21 무3

        5일 : 유15 무2

(특히 원망스럽고, 피하고 싶고, 하기 싫은 마음이 날 때)


※유무념 공부를 해보니 2


유념은 사전 대조(일하기 전 대조)

무념은 사후 대조(일 지낸 후 대조)


  나의 유무념 조목에는 세수와 관련된 부분이 세분화 되어 있다. 워낙 안 되어서 그렇다. 아침 회진 돌기 전 바쁘고 귀찮아 세수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전에는 이렇게 세수를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세수를 안 한 체로 지냈다.

  요즘 유념 무념 공부를 한 뒤에는 아침 회진 마친 후 세수 조목의 무념란에 표시를 하나 하고 세수를 한 후에 다시 유념란에 표시를 한다.

  경계가 지난 한참 후에 ‘경계였지!’하고 마음을 살핀 것도 마음대조한 것이다. 무념도 취사하는 주의심을 챙긴 것이다.    이 챙기는 마음을 실현시키는 것이 유념 무념 공부의 목적인 것이다. 유념을 하면 좋고 무념을 하면 나쁜 것이 아니다. 유념이든 무념이든 번수가 많으면 좋은 것이다.

  요즘 나는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스킨 로션도 발라 유념 무념 공부 전보다 훨씬 깔끔하다. 하하하!!!

※유무념 공부를 해보니 3



이것도 묘미구나!



  가끔씩 있게 되는 건망증 때문에 어쩌다 스스로 골탕을 먹고 나면 모자란 머리를 탓하면서 작은 자학을 하기도 하며 ‘다음에 안 잊어야지.’하는 다짐을 충실하게도 했었다.

오늘은 스승님과 함께 법인 빌딩에 갔었다. 그런데 갑자기 스승님께서 빨리 숙소에 가서 체육복을 가지고 오라고 하신다. “네” 대답을 하고 서둘러 차를 운전해서 숙소인 송대에 갔다.

  방에 들어가서 체육복을 곱게 챙겨 들고 송대에서 나오는데 소변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옷을 마루에 두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막 뛰어서 성탑 앞을 지난 순간,

  “내가 뭐하러 여기에 왔지? 어? 옷!” 다시 되돌아 뛰어가면서  “무념 하나구나!”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나 좋다.

  다만 무념이었을 뿐이지

  건망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묘한 맛이다.

무념을 하고도 기분 좋게 공부가 되니 참 재미있다.

요즘은 유무념 대조의 즐거움을 느낀다. 유념은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이고, 무념은 공부를 잘 못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참 우스운 생각이다.

  유념 무념은 다 내 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고 그것을 잊지 않고 챙겼다는 것이 더 소중하다.

※유무념 공부를 해보니 4



있는 그대로의 나의 삶을 살 뿐!


  나는 몇번 유념, 몇 번 무념에 관심이 많았다.

그것도 정리되어 예쁘게 기재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이 유념 무념을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닌 단 한 번 유념이라도 그 때 마음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번 수에 관심이 없어지니 번 수가 많으면

  “아! 오늘은 치열한 하루였구나!”

   번수가 적으면

  “아! 오늘은 조금은 조용한 하루였나 보다.”하는 생각을 할

따름이다.

번수가 많으면 공부를 잘 한 것이고, 번수가 적으면 공부를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놓아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삶을 살 따름이다.




※유무념 공부를  해 보니 5



결과 중심에서



  그 전에는 항상 오늘 몇 개, 내일 몇 개····  이런 숫자에 관심이 많았다. 어제에 비해서 오늘이 어떻게 나아졌는지 이런 통계적인 결과에 관심이 많아서 유무념 대조한 것을 ‘그래프로 그려 볼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이렇게 결과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유무념 공부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그런 마음을 놓고 체크할 때! 한 번 마음을 챙긴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며 순간순간 체크할 때! 그 때가 중요하구나.

결과에 집착해 있던 마음이 털어짐을 발견한다.




쉬어가는 페이지








나를 보며 웃어보세



나를 보며 웃어보세

心地가 요란해질 때마다

요란해진 나를 보며 웃어보세

心地가 어리석어질 때마다

어리석어진 나를 보며 웃어보세

心地가 글러질 때마다

글러진 나를 보며 웃어보세


나를 보면 웃어보세

부처와 내가 둘인 나를 보며 웃어보세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닌 나를 보며 웃어보세


나를 보며 웃어보세

먼 훗날 그 때에 웃을 일들을

지금 나를 보며 웃어보세

먼 훗날 거기에서 웃을 일들을

여기에서 나를 보며 웃어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