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대에게

‘마음 일기’를 보낸다






지혜와 자유는 어디에 가서 구해오고

더 갖추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지혜와 자유는 이미 내 안에 갊아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 전체 신앙 1

 

상황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이 그대로인데····



힘들긴 하지만 당신이 걸어서 처음 화장실에 갔다.

설사를 해서 화장실이 난리가 났다.

‘치우면 되지 뭐’하고 쉽게 생각했는데 만만치가 않다.

냄새도 역겹고 화장실을 전부 다 청소해야 하니 힘들었다.

아버지 똥인데 얼마나 더럽겠냐 했는데

병중이라 그런지 이상한 냄새가 비위를 거슬리게 했다.

게다가 몸이 지쳐서 그런지 평소처럼 참아지지가 않았다.


대조를 한다.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하지.

억지로 안 나는 척 참을 필요는 없는 것.

그냥 나는 대로 맡으며 청소했다.

힘이 들면 좀 쉬었다 하고····

땀이 나니 기분도 상쾌해진다.


며칠동안 병실에만 있었더니 답답하고

운동 부족을 느꼈는데····

경계따라 마음 한번 바라보니

상황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이 그대로인데

내 속에는 낙원 세계가 이루어지는구나.

-민요달 님

있는 그대로 · 전체신앙 2

 

절규?



괴롭고 싶지 않은 마음, 즐겁고만 싶은 마음,

무엇을 해도 걸리고 싶지 않은 마음,

유무념 잡고서 매일 무념하는 마음,

죽기로써 하라셨는데 그러지 못하는 마음,

너무 두려운 마음, 안되니까 싫은 마음,

눈치 보이는 마음, 머리 굴리는 마음,

피곤한 마음, 답답한 마음,

보고 싶은 마음, 편하고 싶은 마음.


이 마음들이 아름답습니까?

신앙이 됩니까?  부처로 보입니까?

왜 잘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겁니까?

정말 이것이 뭡니까?


사은님! 사은님! 제 갑갑함 좀 풀어주세요.

제가 싫어하는 제 모습,

제가 변화되고 싶은 제 모습,

제가 하고자 하는 제 삶.

제 뜻대로 살게 해 주세요.

그러면서도 벌받지 않게 혼나지 않게

밝고 찬란한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주세요.


무서워요. 사은님.                             -남세진 님

있는 그대로 · 전체 신앙 3

외로움도 나의 소중한 친구





나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게 싫다.

그래서 집에 있는 것도 싫다.

뭔가 바쁘게 해야 하고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

나 혼자 있는 시간이 낯설다고 해야 하나.

혼자 있을 때는 어쩔 줄 모른다.

특히 할 일 없을 때는 더욱 그렇다.

혼자 있으면 죽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생각해보니까 내가 혼자 있는 걸 싫어하는 건

남의 눈을 너무 의식하는 탓도 있는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에 내가 아무 것도 안하고 있으면

날 매우 한심하게 볼 것만 같다.


1학년 초에 동방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선배들이 “할 일 없으면 채팅이라도 하지 그러니?”

또는 “남자 친구 아직 없니?”

하는 등의 그런 질문들이 내게 매우 거슬렸던 것 같다.

그리고 5월 축제의 달 동안은 더 심했다.


난 외로움에 익숙하지 않다.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그대로 받아들인 적이 없다.

항상 누군가를 만나고 잠자고,

혼자 있는 나를 미워하고 윽박 질렀다.

하지만 이제 나의 외로움도 사랑해야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외로울 때

나 자신을 연구해 봐야지.

혼자 있을 때 내 마음의 흐름을 읽는 것.

이것도 마음 공부의 하나라고 생각하니

외로움도 나의 소중한 친구라고 느껴진다.


지선이의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지선이 마음 속의 외로움을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지선이의 자성의 정을 세우자.


-이지선 님







인정하기 싫은 내 모습도 1

친구들의 말솜씨에 기가 죽는다.




나는 항상 열등감에 잡혀 산다.

어느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과 나 자신을 비교하여

그 사람보다 못한 점을 발견해

그것도 못하냐는 식으로 나 자신을 비하시킨다.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내가 내 자신을

더욱더 비참하게 만들고 나를 미워하게 만든다.

오늘도 마음공부 하는 시간에 친구들의 말솜씨에 기가 죽는다.

나는 왜 저런 것조차 잘 하지 못할까?

그런 생각에 내 마음이 계속 찹찹하다.

지금도 그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내가 그 생각을 괴롭힌 것이 아닐까?)

경계: 원래는 내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건마는

친구들의 발표능력 때문에 내 마음이 흔들렸고

그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내 자신을 괴롭힌 것.


이 글을 읽고 난 뒤 장산님께서 이런 경우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한 아주머니의 글을 읽어보라 하셨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네 자신 전부를 받아드려라.

좋은 점이야 쉽게 받아드리지만

나쁜 점은 자기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없애려 한다.

그러나 그러한 점도 너의 한부분이니

그대로 받아드려라.”

이 말씀을 듣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인정하게 되었다. 물론 쉽게 인정한 건 아니다.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오늘 있었던 일과 비슷한 일을 또 겪게 될 것이다.

그 때마다 어르신의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문세원 님












인정하기 싫은 내 모습도 2

모두 다 사랑이예요!



  장점이든 단점이든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이야기 하면 왠지 껄끄러운 느낌이 든다. 좋은 쪽으로 이야기를 하면 그 이면에 뭔가가 있나 더 잘하라는 뜻인가 뭔가 하여 요란했고, 단점은 단점대로 나의 깊숙한 내면을 들킨 것 같아 힘들었다. 사실 단점을 직접 앞에 대고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나 스스로 느끼는 콤플렉스이지.


  나의 만족스럽지 못한 면을 자식을 통해서 보게 될 때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럴 때마다 참 힘들었다. 그런데 요즈음 이 부분에 대해 많이 편안해져 있음을 느낀다.


  오늘도 평소 가까이 지내던 이웃 아줌마가 나에게 학교 다닐 때 옆눈질 한 번 안한 모범생이었을 것 같다며 절제되고 잘 다듬어진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그런 모습에 조금 더 넓게 감싸안을 수 있는 포용력이 있다면 금상첨화라나. 칭찬같기도 하고 속 좁은 것을 탓하는 것 같기도 하다. 순간 작은 파문이 일어나다 금새 잔잔해진다.


  나의 싫은 모습이 되새겨 질 때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괴로워했었다. 그리고는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싫은 나의 모습,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 그리고 부러워하는 나의 모습 모두가 또 하나의 내 모습임을 인정한다. 부인하지 않는다.


모두를 끌어안으니 오히려 편안해진다.


원래의 마음, 일어난 마음 모두 모두가 다 사랑스럽다.
















인정하기 싫은 내 모습도 3

 

미웠던 내가 사랑하는 내가 되네

오늘 아침에 철학 수업이 있어서 학교에 일찍 갔다.

다른 때 같으면 우현이가 벌써 와 있었을텐데 오지 않았다.

9시가 조금 지나서 우현이가 들어왔다.

갑자기 우현이가 악수를 하자는 것이다.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무슨 악수냐고 생각했는데

우현이가 말하기를 “우리 둘 다 떨어졌다.”라는 것이다.

알고보니 R.O.T.C 1차 결과 나와 우현이가 떨어진 것이다.

우현이가 나를 위로해준다고 악수하자고 한 것이다.

저도 떨어졌으면서 속에서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

다행이도 수업은 휴강이 되었고

나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동방에 왔다.


시험을 치른 현수, 우현, 나 셋 중에서 가장 자신이 있다고

꼭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결과는 현수만 합격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나는 동방에 앉아서 음악을 틀어놓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됐다.

떨어진 것에 대한 실망 그리고 친구들 선배, 부모님의 실망

이런 생각이 나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경계임을 알아차렸다.

‘처음 학교에 올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불합격 소식으로 인해 마음이 요란해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내가 얼마나 학군단이 되기를 바랬으며

또 얼마나 노력했냐 에 대해서

그런 마음은 간절했고 또 나름대로 준비도 해왔었다.

그러나 가장 큰 실수를 했다.

자신감이 지나쳐서 자만심이 되었던 것이다.


현수가 내게 했던 “몸관리 잘 해야 시험 잘 치르지.”

라는 말에

그 당시에는 “응”하면서도 속으로는 “너나 잘 해”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충고를 들었어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나와 함께 술을 마시고 했던 사람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그것은 절제력이 부족했던 내 잘못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자신부터 생각을 해보니

화보다는 뭔가 알 수 없는 기쁨이 있었다.

언젠가 교무님께서

‘젊었을 때 많은 경험을 해보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나에게 이번 일은 큰 경험인 것 같다.

나는 떨어졌을 때의 쓰라림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것을 절망으로 가져가지 않고

나의 반성의 계기로 삼았다.


그러고나니 이제부터라도 모든 일을 함에 있어

간절한 마음과

또한 그에 따른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경험이 언젠가 내가 더 성장했을 때

큰 밑거름이 되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명원 님

부부로 만난 공부 인연 1

병신이라 장애인 주차장에

             주차했으니·····


무협지와의 전쟁. 이 전쟁은 16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래도 5년 전까지는 그런 대로 마누라 눈치도 살피면서

보던 사람이 이 때부터는 막무가내로 보는 것이었다.

여러 번 싸우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음공부를 시작하고부터는

무협지와의 거리는 멀어졌다.

이 공부로 그 습관이 끊어진 것 같다며 자신 만만했었다.

그 에너지가 일기 기재, 정전 용어 정리,

마음 공부로 옮겨졌고,

나와의 숱한 경계에도 불구하고

마음 공부를 꿋꿋하게 밀고 나가는 것을 보고,

이제는 완전히 끊었다고 나도 생각했다.


그러나 작년 봄부터 다시 손에 잡기 시작했다.

밤낮을 모르고 빠지는 습관에 부담을 느끼기도 하고

막는 게 상책은 아니라는 생각과

마음 공부가 시작되면서 무협지에 대한 생각은 놓기로 했다.

책을 보는 남편을 대한 순간

대중만 잡으니 한동안 요란한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가을 남편이 눈이 침침해졌다고 하여

병원에 가니 노안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하는데

눈을 너무 많이 쓰는 것도 한 원인이 된단다.

걱정이 되어 안경도 하나 더 맞추고,

눈 영양제도 사다 주고 아무튼 전전긍긍했다.

그 동안 에너지가 쌓여서인지 무협지를 보는

남편의 모습에 요란함이 없었는데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보니

또 무협지를 보고 있는 남편이 한심하다는 생긱이 들었지만

모른 체 하고 계속 잤다.


일요일이라 교당 가는 시간 되었다며 일어나라고 했다.

아무 반응이 없으니까 방으로 들어와 안아 일으키는

남편을 밀치며 “병신, 저리가!”라고 소리쳤다.

어이가 없었는지 농담으로 들었는지 다시 반복해 보라기에

“병신 꼴값하네”라고 뱉고는 모른 척하고 누워

혼자 소리 죽여 웃었다.

웃으면서도 나의 이런 행동에 놀라며

남편의 반응이 궁금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편안했다.


일어나 준비를 하는데

차에 가스를 넣고 온다고 하기에

화난 척하고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참 있다 돌아온 남편을 따라 1층에 내려오자

웃으며 “병신이라 장애인 주차장에 주차했으니

사모님 타십시오.”라고 했다.

나도, 아이들도 모두 크게 웃었다.

남편의 이런 여유로움과

나의 이런 힘이 어디서 나올까?


이 모두 경계를 대할 때마다

마음을 챙기고 또 챙기는 공부심에서 비롯되는 줄 알기에

든든하기만 하다.




남편인 류백철님의 감정···········

내가 재미있는 것도 너무 주착하면 주위를 괴롭게 하므로

대종사님께서는 “잡기(雜技)를 말라.”고

계문으로 경계토록 하신 것이라 봅니다.

당신의 그 에너지와 무협지를 보면서도

그런 나를 대조하는 마음이 서로서로 바탕이 되어

이제는 마음공부 시작 때처럼 놓아지게 됩니다.

당신의 관심이 나의 잡기(雜技)를 놓게 하심에 감사드리며,

모른 척하는 마음이 실은 대조하는 마음,

공부심의 발로임을 알고 나니

당신 또한 나의 스승으로 어느덧 다가와 있음에

마음 든든합니다.

감사합니다.



-석희진 님




부부로 만난 공부 인연 2

이렇게 놀라운 말을 내가 하다니···




경아가 화를 내기는 하겠지만 가장 최근에 있었던

따끈따끈한 싸움을 밝힌다. 역시 경아 건강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제 때 먹지 않아서 여러 봉지가

남아 있는 것을 알고는 화가 나서 다음날 아침

말도 않고 서너 시간쯤 가출(?)을 해버린 것이다.


경아는 말을 않는다든가 이렇게 도망갔다가 오면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드는가 보다.

며칠 뒤에 아기를 할머니에게 데려다 주고 오는 길 내내

그 일로 버림받고 헤어질 듯한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싫었다.

사실 나는 그런 생각조차 하기 싫은데 말이다.

무슨 얘기를 해서 쐐기를 박아야 할텐데·····

무작정 미안하다고 할 수도 없고·····


문득 떠오르는 말

“야, 너는 왜 ‘말을 안 하는 것’이

네가 싫어서 그런다고만 받아들이냐.

꼭 말을 해야 대화냐.

내가 너무너무 화가 나 있다는

또 다른 의사 표현임을 왜 몰라주냐.”


그 말에 경아도 놀랐고,

말을 한 나도 너무 놀랐다.

이렇게 놀라운 말을 내가 하다니

바로 경아와 나는 다정히 웃을 수 있었다.


사실 싸워서 이렇게 내가 멋있게 이길 수 있는 경우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싸우면 말싸움인데 늘 내가 밀린다.

“그래 너 마음공부해서 잘 났다.

나는 마음공부 못해서 요모양 요꼴이다.”

그리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뒤돌아 누워버린다.


마음공부를 몰랐다면 내 스스로 위로하고 합리화하고

오히려 더 쉬울텐데 마음대조를 하라니 어쩌라니····

화가 두배 세배 더 나게 된다.

마음 공부 못하는 열등의식까지 더해서 말이다.


-황일천 님

부부로 만난 공부 인연 3

이렇게 스스로에게

속으며 살아가는구나


저녁 늦도록 아이들 방에서 선명이의 수학 공부를 도와주다가 큰 방에 돌아오니 도오씨가 누워서 TV 시청을 하고 있다.

문득 짜증이 일어나며 입으로는 투덜거리는 소리가 나온다.

일어나는 마음을 바라보며 대중만 잡아간다.


자세히 분석해 보니 선명이의 수학을 지도 하다가

나의 일만 밀린 것 같아 짜증이 난 것이다.

(내일 달일 약의 처방 작성할 일이 밀렸음)

또한 도오씨가 누워서 한가롭게 TV를 보고 있는 모습에

나만 바쁜 것 같아 짜증이 난 것이다.


그렇구나!

도오씨의 모습을 보기 전에는 짜증나는 마음이 없었는데

도오씨의 모습을 보는 순간 짜증이 일어났구나!

일어날 만해서 일어났을 뿐이로구나!


처방 작성하는 일은 나의 일이고

선명이 공부 가르치는 것은 남의 일인가?

선명이 수학 지도하는 일이 바로 나의 일 아닌가.

사람이 이렇게 스스로에게 속으며 살아가는구나!


-정동주 님

  부부로 만난 공부 인연4

그런 거 말고



장모님 간병하러 병원에 간 선경이가 금새 돌아왔다.

깜짝 놀라 얼굴을 보니 한바탕 말다툼을 벌인 모양이다.

“장모님 하고 싸웠구나?”

“몰라”

“왜 그랬는데? 얘기 좀 해주라.”

“몰라! 말도 하기 싫어!”

분이 안 풀려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싸운 얘기를 해주는데

들어보니 배꼽을 쥐고 웃을 일이다.

내용인 즉, 장모님이 귤과 요구르트를 내놓으면서

‘옆에 할머니가 주셨으니 할머니 보는 앞에서 지금 먹어라.’고했는데 선경이는,

‘생각이 없으니 나중에 먹겠다.’고 해서 다퉜다고 한다.

“물론 꼭 오늘 일만은 아니고 며칠 전부터 작은 불만들이

누적되어 온 연장선상에서의 일이긴 하지만 왜 이렇게

마음이 답답할까?”

하면서 뉘우치는 마음이 가득한 선경이.


병실 문을 박차고 나온 에너지와 집에 와서 이불 뒤집어쓰고

자신의 행동에 괴로워하는 그 마음이 아름답다.

“그러게 자성의 정을 세워야지 자존심을 세우니까 그러지.”

“어떻게 하는 게 자성의 정을 세우는 건데?”

“일상수행의 요법대로 하는 거지! 아! 경계구나. 공부할 때가 돌아왔구나! 하고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아니!! 자성의 정을 세우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그러니까 장모님과 다툰 그것이 바로 ‘경계구나!’하고···”

“그런 거 말고 지금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게 자성의 정을 취하는 거냐구?”

“자성의 정은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상태에 있는 것이지! 자성의 정을 세우면 집에 있어도 마음이 편할 것이요, 자성의 정을 세우지 못하면 집에 있으나 병원에 가 있으나 마음이 편치 못할 것이지····”

“답답한 사람이네! 그런 거 말고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자성의 정을 세우는 거냐고 묻는데 엉뚱한 소리만 하네!”

“어··· 그럼 병원에 전화해서 장모님께 사과해.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고 오늘은 기왕 돌아왔으니 내일 가겠다고 말씀드려.”

“지금 병원에 갈까?”

“어!? 그럼 아주 확실하게 자성의 정을 세우는 거지!”


선경이는 다시 외투를 입고 가방을 챙긴다.

“왜 왔냐고 하면 뭐라지?”

“뭐라긴! 마음공부해서 자성의 정을 세웠다고 해야지!”


-천원택 님



부모와 자식, 때론 아픔이 되지만 1

시어머니의 습관과

      나의 습관의 차이인데···




냉장고에서 반찬을 낼 때 어머님은 뚜껑을 냉장고에 두시고 반찬을 내고 나는 밖에다 뚜껑을 벗기고 식사 끝낸 후 다시 닫아 냉장고에 둔다.


어머님이 반찬을 내실 때 나는 반찬 뚜껑 찾느라 왔다갔다하다 못 찾고 다른 그릇을 찾아서 냉장고에 넣을 때마다 냉장고 속에 있는 뚜껑을 보고 분별성을 내었다.

‘반찬 그릇을 내었으면 보이는 곳에 두시지 꼭 냉장고 속에 뚜껑을 넣어 두실까?’


며칠을 그렇게 지내고 생각해보니

결국 어머님의 습관과 나의 습관의 차이인데

나의 습관들인 쪽으로만 고집하는 나를 발견하니

그것을 유무념의 공부 거리로 삼고

어머님의 습관들인 쪽으로 챙겼으면 유념,

나의 습관들인 쪽으로 했으면 무념,

챙기는 순간 ‘이것이 맞다. 저것이 틀리다.’가 아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모두 공부의 기회일 뿐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뿐이다.

-박승인 님

부모와 자식, 때론 아픔이 되지만 2

아~ 아버지는

     그대로 나의 아버지이신 것을····


[내 안의 또 다른 나] 원광여고생들의 마음공부 일기를 읽는데 아버지에 대해 쓴 일기가 있었다.

그런데 왜 내 마음이 짠- 하면서 눈물이 나는 걸까?


그건 내 마음 한 쪽에 자리잡고 있는 나의 아버지.

내 안의 아버지가 고개를 내밀고 있음이다.

아버지의 삶과 아버지의 살아오신 그 정성, 그 신심.

당신 몸을 안 돌보고 쏟아오신 온갖 고생.

지금도 병상에 누워 계시는 것 등등이

내 맘을 저려오게 한다.


순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아버지의 살아오신 삶을

가슴 아파하면서도

‘그래도 아버지는 공부를 더 하셔야 돼.

공부가 부족하셔.’라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

아! 아버지는 그대로 나의 아버지이신 것을.

아버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 어떤 분이라 할지라도

아버지는 아버지이신데 나의 아버지이신데

내가 이러쿵저러쿵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닌데

내가 감히 아버지의 삶을 이해한답시고

이러쿵저러쿵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닌데,

그 모든 것들이 하찮은 나의 분별에 불과한 것이었구나.


이 일기를 기재하면서도

나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다.

내 딴에는 아버지를 이해한답시고 있었지만

아버지를 그대로 다 인정하지 않았음을

그대로 신앙하지 못했음을·····


오늘에서야 나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게 되는 구나.

내가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아버지······ 아버지········


감정>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어느 학생의 일기 한 장이

서로서로 공부의 자료가 되고

또한 황인상 교무님의 참회문으로 탄생되었군요.


공부인은 이러쿵저러쿵 한 만큼 깊은 만남이 되고

또 마음 공부를 하기에 어리석어진 만큼 혜(慧)가 밝아지며,

원망한 만큼 감사하게 되는 것이

일상수행의 돌리는 기쁨이고 신앙의 힘이며,

전체 신앙이지요.(미운 정, 고운 정)

四恩의 피은(被恩), 보은(報恩), 배은(背恩)이 하나의 진리 작용으로 만나지는군요.


참회는 기쁨입니다.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개척하는 초보,

악도를 놓고 선도로 들어오는 초문)


-황인상 님

내 아이들에게 1

주현이 숙제 경계




어제 주현이가 종이를 가지고 와서

글짓기를 해가야 한다던 것이 생각나

그 숙제를 했느냐고 물으니 제목이 뭔지 몰라서 안했단다.

종이를 가지고 와 보라고 했더니

글짓기를 몇 줄 했다가 쓱쓱 그어버린 것이 보였다.


제목을 몰라서 글짓기를 안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없었음이 보인다.

못하는 것이라도 정성을 들이기를 바랐던 나는

낙서하듯이 쓱쓱 그어져 있는 종이를 보자

마음이 요란해진다.


경계다.

어떻게 취사할까 잠시 궁리하다가

나는 주현이를 나무라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먹는다.

나무라다보니 계획에도 없던 알밤도 한 대 먹이고

다시 요란해진다.

경계임을 보고 취사를 한다고는 했으나

중간에 마음을 놓쳤다.

주현이에게 학교에 가서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글짓기를 하라고 일렀다.


어제 저녁에 챙겨 보아야지 해놓고서는

잊어버린 나의 잘못도 크건만

모두 주현이의 잘못으로 미루었던 나의 생각이

마음을 요란하게 하는데 작용을 했음을 본다.


주현이는 주현이의 정도에서

글짓기를 하고 줄을 그어놓았건만은

반듯해야한다는 나의 분별 주착심도 요란함에 한 몫을 한다.


참회문에

<죄는 본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라

       마음이 멸함을 따라 반드시 없어질 것이며,

업은 본래 무명인지라

     자성의 혜광을 따라 반드시 없어지나니> 하셨듯이

나의 어리석음이 밝아지니

     자성의 혜는 스스로 세워진다.


-김은희 님




내 아이들에게 2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던

              내 아이들만은·····




점심을 먹고 나서 총부에 종법사님을 배알하러 간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웃어른을 뵈러 가면

몸가짐과 의복을 단정히 하고 가야 된다고 생각하며,

내 아이들도 긴 바지에 양말을 신고 갔으면 했다.

아내에게 얘길 하니 저기 어른도 그냥 가고

다른 애들도 편한 데로 가니 그냥 두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던 내 아이들만은

잘 해줬으면 하는 욕심이 나왔다.

총부에 도착하여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실내에 들어 왔으면 당연히 모자를 벗고

더군다나 종법사님을 배알하는데

마냥 그대로인 걸 보니 괜히 마음이 언짢아졌다.

‘아! 경계구나.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다른 사람들의 복장 경계(내 아이들을 포함해서)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마음 대조) 자성의 정을 세우자.’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 봤다.

그런데 그 모양들이 그런 대로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종법사님이 들어오셨다.

복장이 이렇든 저렇든 모자를 썼던 안 썼던

아무런 반응이 없으셨다.


그렇구나, 나 혼자 주착심에 빠져 있었나 보다.

종법사님의 말씀 도중에 아이들이 뛰어 다닌다.

다른 때 같으면

‘아니, 쟤 부모들은 뭐하고 있는 거야?”라며

신경이 날카로와졌을텐데

그 모습 역시 너무 자연스럽다는 마음이 일어난다.

‘저 아이들 부모도 꽤나 신경이 쓰이겠구나.’하는

안쓰러운 생각도 든다.


막상 일기 기재는 당시의 마음공부를 그대로 기재하였지만,

아직도 내 마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어른을 뵈올 때, 복장을 아무렇게나 해도 되며

다만 마음만 소중하다는 것인가?

이것 역시 실체(마음)와 형식(복장)의 분별성일까?


내 나름대로 마음공부를 아이들에게 적용해본다면,

두 아이를 불러놓고

“너희들 오늘 종법사님 배알하러 가는데 어떤 마음가짐과

복장으로 갔으면 좋겠는지 너의 마음에 물어보고

(마음공부 또는 마음대조) 행동해라.”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도 되는 건지 의문이 난다.


감정>


‘분별없는 자리에서 분별’하는 공부.


하용훈 님께서 복장을 단정히 하여야 한다는 분별(고정관념)에 계속 잡혀 있었다면

복장에 신경 쓰느라 종법사님의 법문을 주의 있게 듣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무엇이든 이렇게 분별성이 강하여 한 생각에 주착되면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도 하용훈 님께서 가지고 있는 분별성과 주착심을

아이들의 상황이나 마음의 흐름을 보지 않고 강요만 한다면

아이들에게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원래는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것은”

모두 같은 원리입니다.

하용훈 님께서 깨어서 자신의 마음의 흐름을 보고

“원래는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것”을 아시고

아이들에게 복장을 단정히 하라고 하신다면

똑같은 지도를 하시더라도 아이들에게는 다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하용훈 님





내 아이들에게3

불평도 다툼도 공부 삼아서 하니




마음공부, 왜 나만 양보해야 하나?

2주만에 가족 법회를 하고 마음공부를 했다.

아직도 마음 일기라면 저항감이 있는지라

일기 발표는 유보하고 이것저것 나오는 대로 대화를 했다.

내가 먼저 가족들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왜 내가 뭘하자고 하면 싫어하는가.

마치 일부러 안 하는 것 같아. 이 집에 나 혼자 사는가?

이제는 모두 다 성인인데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느냐,

다 이 집의 주인들인데 왜 집안 치우고 하는 것들에는

엄마나 아빠만 이냐?”

“아빠가 하잔 다고 해서 안하고 그런 적 없어요.

나도 화장실 청소를 많이 했어요.

나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만 소외당하고 있고

나만 양보를 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조금씩 불만을 쌓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의도적인 항거나 파괴 행위를 하거나

불평을 말한 적이 없었지마는

속으로는 다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우리집(아니 우리 사회의 각 가정)의 문제가 아닌가 싶었다.


4시간의 대화 끝에 결국 가족 간의 이해가 부족하고

서로의 마음을 몰랐던 것이 문제의 핵심임을 알았다.

불평을 하지 않는 것만이 화합을 위하여 좋은 줄로 알고

다들 조심하고, 인내하고, 양보한 것이

사실은 피해 의식으로 응어리져 있어 대화를 피하고,

억지의 인내심과 양보심으로 오히려 만성적인 불만이 되어,

가족 간의 자발적인 윤기가 없었고

매사에 소극적인 감이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가정이 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겠지마는

이런 문제를 안고 속으로 고민을 하고 있으리라.


불평도 다툼도 공부 삼아서 하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이것으로 모든 병의 치료가 된다.

오늘의 불평 토로 법회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으니,

작년에 가족 법회에서 불평을 하여 공부심으로 세탁을 한 것은

이번 불평 공부에서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그 때 장산 종사님께서 해원했다고 하시더니

마음공부가 이렇게 중요하다.


가능한 한 매주 가족 법회를 하여

마음 공부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으로 원칙을 합의했다.

아들은 아직 마음공부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지마는

딸 희진이는 전공인 가족학에도 활용하여 크게 역할을 한다.

-최병오 님

형이랑 아우랑1

자기 눈에 그 레고가····


형이 자기가 만든 레고가 대장이라고 우겼다.

더 좋은 것도 많은데 왜 자기 것이 대장이라는 거야.


경계다. 자기 눈엔 그 레고가 좋겠지.

그래서 대장이라고 해주었다.

-이주현(초등학교 1)




형이랑 아우랑2

하지만 하면 안되니까

    하지 말라고 해야지


내가 가습기를 꺼내자고 하여서 오랜만에 가습기를 틀어보았다. 그런데 주현이가 계속 건드리면서 장난을 쳤다.

나는 계속 하지 말라고 하여도 하였다.


아빠께서도 그만하라고 하시고

엄마께서도 그만하라고 하시자 그때야 그만했다.

하지만 또 하였다.


경계다. 장난이 치고 싶겠지.

하지만 하면 안되니까 하지 말라고 해야지.

한참 후에는 멈추었다.                -이준화(초등학교 4)

형이랑 아우랑3

내가 원래 동생을 미워했나?


동생과 나 먹으라고 야쿠르트 2개를 주셨다.

그런데 동생은 먼저 먹었다. 나는 피아노 때문에 먹지 못했다.

그래서 저녁에 먹으려는데 동생이

“누나! 그거 내꺼야”라고 떼를 쓴다. 그 순간 너무 화가 났다.

‘야! 경계다! 마음대조 공부할 시간이야’

이럴 때마다 선생님 얼굴이 떠올라 참 좋다.


내가 원래 동생을 미워했나?

아니야. 아주 조그마한 일에서 그런 건데····.

그런데 왜 이렇게 화가 나고 머리에서는

바보, 멍청이라고 생각이 될까?

아! 경계를 따라 나와졌지!

마음대조를 하니 마음이 확 풀렸다.


-박종인(초등학교 4)





형이랑 아우랑 4

불완전함,

그 자체가 이미 온전함이었던 것이다.



동생을 불쌍하게 여겼다.

안타깝고, 그 애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함에

억울함까지 들었었다.

그런데 알았다.


그 애를 불쌍히 여기는 건 내 분별성과 주착심이요,

동생의 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는 자체가

이미 온전함을

선악 업보를 나무랄 수 없고,

경계를 원망할 수 없고,

나의 인생 프로그램을 원망할 수 없듯이·····.


동생이 ‘이번 생’이라는 경계를 따라 이런 모습으로도,

또 어떤 다른 모습으로도 있을 수 있겠다는

사실에 믿음이 간다.


내가 그렇게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불완전함, 그 자체가 온전함이었던 것이다.


동생을 통해서 세상을 공부했다.

평소에 장애인에 대해서

일어나는 나의 불쌍함, 연민들은

어떻게 보면 나의 분별성과 주착심이었다.


장애 역시 온전함이며

장애를 불쌍함, 모자람으로 연결지었던 건

나의 문제였던 것이다.


-박은공 님















사랑!?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1

연애가 피곤한 게 아니고

폼나게 보이려는 마음이·····




@@이가 공연 연습이 늦게 끝난다기에

내가 기다려주마 얘기했다.

그리고 나서 저녁 나절에 다시 전화 통화를 하게 됐는데

“오빠 그냥 가세요. 한참 기다려야 될텐데···”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한참 기다려야 될텐데’라고 말한 부분은 귀에 안 들어온다.

그저 ‘그냥 가세요’라는 말만 귀에 맴돈다.

왜 기다리겠다고 다 말해둔 일을

다시 번복하고 가라는 걸까?

내가 기다리는 게 싫은 것일 수도 있어····

이럴 땐 확 일어서서 집에 가 버려야 되는데······

아···· 어렵다·······

한참을 생각해보지만 역시 답이 안 나온다.

폼 나게 집으로 가버리지 못하는 내 자신이

조금 비참하게 느껴진다.

즐겁게 기다릴 수 있었던 마음이

짜증나는 마음으로 변신한다.

차분히 앉으니 내 모습이 좀 보인다.

나는 황송하게도 기다려주는 것이고

내가 기다려주는 것에 대해 @@이가

그저 고맙게 생각하기만을 바라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음~ 역시 이번 경계도 나에게 문제가 있다.

내가 @@이를 기다려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은 @@이가 나에게 기다릴 수 있는

기회와 즐거움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나도 @@이에게 감사할 일이고 내가 원하는 일이니까

기다리지 말라는 말에

그냥 “난 기다리고 싶은데”라고 말만하면 끝인 것이었다.


“연애하는 거 그거 되게 피곤한 거야”라고

가끔 말해보지만

사실 연애가 피곤한 게 아니고 폼 나게 보이려는 마음이

           (사실 상대방에겐 폼 나게 보이지도 않는데)

연애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인가보다.







사랑!?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2

나참··· 괜힌 사람 서운하게 만드네·····



오늘 내야하는 리포트를 쓰느라 밤을 새고 있다.

아까 저녁 때 @@이에게 장난삼아

“내가 오늘밤을 새다 졸릴지도 모르니까

새벽 세 시에 전화 해주라.”했더니

그러겠다고 흔쾌히 대답한다. 기분이 좋다.

다시 헤어지면서 “에이 아니다. 피곤할 텐데 그냥 푹 자····

니가 전화 안 할 거란 거 안 봐도 비디오다.” 했더니

꼭 할거라고 장담을 한다.


지금 시간은 3시 16분····· 예상대로 전화는 안 왔다.

그럼 그렇지·····

2시 57분 즈음부터 은근히 기다렸는데

결국은 안 오는 것을 보니 서운함이 느껴진다.

안 올 것이라는 예상이 맞은 것이

이렇게 서운할 줄은 몰랐는데

내 마음을 제대로 본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것 같다.

내 마음을 못 보는 것인지

내 마음에 속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가 전화하지 않고

그냥 자기를 바라는 마음도 분명히 있었고

그래서 전화하지 말란 말을 한 것이었는데

정작 전화가 오지 않으니 꽤 서운하다.

“그러게 전화하지 말고 자랄 때 그냥 그러겠다고 할 것이지

나 참···괜히 사람 서운하게 만드네.”하는 생각이 든다.


훗 ····· 그렇지만 그게 아니다.

@@이가 전화하겠다고 말한 것이 과연 잘못인가?

전화하겠다고 해서 아까 내 마음을 즐겁게 해줬고

지금 못 한 것이야 결국 내가 의도한대로 되었으니

그 역시 잘못이라곤 볼 수 없는데······

사소한 일이니 즐겁게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간다.

<감정>

어느 경계도 사소한 것은 없단다.

특히 사람을 사귈 때 이런 경계를

법에 대조하여 공부하지 않으면

처음에는 사소한 것이니 넘어가자며 지나갈 수 있지만

결국 그 사소한 것이 쌓여 힘들어지게 된단다.



마음이 풍족해짐을 느끼면서·······

오히려 전화할 것을 잊어먹고

자고 있을 얼굴이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감정>

마음공부를 하니 사랑도 더욱 깊어지는구나.



사랑!?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3

내가 정말 사랑한 건



하루종일 우울했다. 시간이 있으면서도 모든 할 일을 제쳐두고 먹고 자고 먹고 자는 생활이 계속 되고 있다. 깨어있기가 싫었다. 나의 의식 속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 애가 준 선물이 보기 싫어 책상 밑으로 밀어버렸다. 눈물도 났다.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나는 눈물일까?


생각하기도 싫었고 생각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결국은 나를 위한 눈물이라는 것을.


그 애를 잡으려는 욕심. 동시에 내 생활을 번 듯이 지키려는 욕심. 물론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 욕심 둘 다 너무 강해서 거기에 충족하지 못하는 내 자신과 상황이 너무나 서럽고 억울했던 것이다.

··························································

힘들면 힘든대로 놔두자.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를 위해서 나를 사랑하므로 내 생활에 충실하려는 것이다. 그애가 밉지 않다.


내가 소중한 존재이듯 그 애도 정말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단지 나와 지금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연이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는 정말 놓아야지!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한,

소유에 대한

애착을 버리자.

아무 생각도 하지말자.

나는 이때까지 무엇 때문에 그리도 오래 그 인연을 잡아왔을까. 결국 내가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는 나인데······.

그 애에게 쏟았던 많은 에너지를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 쏟아 보고 싶다.

이렇게 가슴 아프고 터질 것 같은 것은 그 애에 대한 혼자만의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나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나에 대한 실망과 고통이었던 것이다.


고통의 끝까지 가보니 그 고통과 견줄만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결국은 나 자신인 것이다. 나 없이는 그 애도 없고, 내 생활도 없는 것이다. 그 애를 놓으려는 마음에 그 애와의 좋았다고 생각이 드는 시간들이 생각 나, 다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잡으려 한다.


그래 인정하자. 좋았던 때는 좋았던 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


그 동안 나의 에너지를 쏟을 수 있을 때까지 쏟았다.

거기서 솟아나는 많은 감정들도 느껴보았다.

이제 버리자. 버려야 모든 것을 갖는다는

스승님의 말씀을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아니다.

‘그런 나’도 ‘정말 소중한 나’이고

‘그 인연을 놓는 나’도 ‘정말 소중한 나’이다.

두려우면 두려운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바라보고 파고들자.

·····································










사람들 속에서1

      아차, 내가 시기심을 내고 있구나.



오전에 박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업무 얘기를 나누는 중에 아침에 있었던 국방과학상

(연구소에서 일년에 한번씩 우수한 연구결과를

심사하여 포상하는 제도)

논문 심사결과를 얘기했다.

박 박사가 목소리를 높이며 자기 팀의 연구내용이

심사위원들로부터 매우 좋은 평을 받았다며

잘하면 金상도 받을 수 있겠다고 자랑삼아 얘기를 한다.

얘기하는 사람만큼 듣는 나는 신이 나질 않았다.


그밖에 누구누구가 국방과학상의 후보가

되었느냐고 물어보았다.

후보들을 쭉 얘기하는데 나는

“아니, 그 친구가 그런 것을 가지고 償을 신청했단 말이야?”

하는 생각이 몇 번 들었다.

그러면서 적당히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러기를 잠시,

“아차, 내가 시기심을 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마음공부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심으로 공부해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내가 시기심을 내고 있는 것에 대한 대중만 잡았다.

(그 시기심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시기심에 끌리고 있는 나를 가만히 보고만 있자니 우스웠고

드디어 지혜가 쏟아나고 있었다.


일전에 권도갑 교무님께서 유성교당에 오셔서 하신

법문 말씀이 떠올랐다.

남을 칭찬해주고 잘 되기를 바랄 때

우리의 마음은 그 만큼 오롯해지고

오롯해지는 만큼 스스로 복을 짓게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 때 나는 ‘남이 잘되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위해줄 때

우리의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해지니 그것도

정신 수양의 한 방법이겠구나.’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자연스럽게 같이 기뻐해 줄 수 있는 마음이

우러나오고 있었다.

박 박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일이 잘 되었으니

점심을 사라고 했다.

대답은 “당근이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마음 한번 잘 돌리니

이렇게 공짜 점심도 먹게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마음공부는 경제적이야.”


-한윤성 님


사람들 속에서 2

교장 선생님과의 갈등 공부




교장실에 가서 ‘신문을 가져가도 될까요?’하니까 전화를 받으시면서 가져가라고 하신다. 굉장한 힘이다. 지난 금요일 교장실에서 3시와 5시에 서로 큰 소리가 오고 갔는데 오늘 교장실 문을 열면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금방 편안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교장실에 일부러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고 교장실 앞을 지나가기가 싫어서 돌아서 2층을 갔을 것이다.


그 날 집에 와서 대조를 해보니 그때서야 나를 환하게 볼 수 있었다. 나를 보고 나니 내가 교장 선생님께 큰 소리로 화를 낼 때 정당하다고 주착이 되어 있었기에 나의 요란함에서 온 어리석음과 그름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 그분의 잘못된 언어 습관 때문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고 그러한 잘못된 부분을 내가 부딪힘으로 해서 고쳐주어야 한다는 것에 주착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날도 내가 평소에 벼르던 기회가 드디어 왔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밀고 나간 것이다. 두 번째 들어가서 당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모든 일은 규정대로 지시만 했을 뿐이라고 강변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 내가 한 일의 결과를 알 수 있었다.


그 분은 기분이 굉장히 언짢았고 그리고 절대로 내 의도대로 당신의 언어 습관은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분의 언어 습관을 고친다는 방법이 나도 그 분과 같이 남의 기분만 언짢게 했을 뿐이다.


내가 굉장히 요란해 있으면서도 그 요란함을 보지 못한 이유를 찾아보았다. 내가 교장 선생님을 잘 가르치고 있다는 자만심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요란함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주착되었던 것이다.


요란함을 찾지 못하니 그 뒤에 오는 어리석음 그름은 어떻게 알 것인가? 이렇게 순서대로 내 마음을 찾아내니 교장 선생님에 대한 분별성과 주착심이 뚝 떨어지면서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이 되어 교장실 앞을 지날 때마다 속으로 ‘죄송합니다.’를 하게 되었다.


-오세형 님



사람들 속에서 3

나는 감시자


군대 친구모친의 열반을 조문을 가게 되어

십여명 이상의 동기생들이 모이게 되었다.

생활 속의 대화를 하면서

그 중 한 사람이 가끔씩 마음에 걸린다.

마음대조를 하면서 ‘어디서 걸리는가?’하고

내 마음을 봤더니

그 사람은 ‘원래 잘난 체 하는 사람’이라는

주착심이 나에게 있었고,

그 사람이 말할 때마다 잘난 체를 하는가 안 하는가 하고

그의 말 속에서 찾고 있었다.

잘난 체 하는 말을 하는지 안하는지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마음대조를 해보았다.

‘그는 원래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았는데

그에 대한 나의 분별성과 주착심으로 인하여

잘난 체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 어리석음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혜를 세우자.’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그를 보는 내 마음과 눈이 부드러워지고

얘기하는 그가 모처럼 만난 친구로써 반갑기 그지없다.

그리고 정다운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정수광 님

사람들 속에서 4

묘한 배신감과 함께



예전에 우리 한의원에 수년간 근무했던 아가씨가 결혼하여

아들을 낳은 후 최근까지 인사도 오고 약도 지으러 오곤 했는데 우리 한의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4-5일 전에 개원한 다른 한의원에 근무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구나 점심 시간에는 우리 한의원에 근무하고 있는 아가씨에게 전화를 해서 환자가 많은가 적은가 등을 알아보며

(지금 근무하고 있는 김양과 같이 근무했었기 때문에

안면 있는 사이다.)

또한 우리와 사이가 가까운 줄 뻔히 알면서 식당 주무님에게

그 한의원 선전을 해달라고 부탁한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묘한 배신감과 함께 기분이 언짢아진다.

경계가 왔구나!

일어나는 그 마음을 바라보며 대중 잡는다.

크게 요란해지진 않아도 은근히 여운이 남아 있다.

자세히 분석해보니 가족처럼 여기고 정을 주었기 때문에

내 편이라는 착심이 있어서

그러한 마음이 일어났음을 알겠다.


원래 내 편, 네 편이 어디 있던가.

놓아버리자.

내 편이라는 관념과 상을 놓아 버리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 사람으로선 그럴만해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정동주 님












‘일기기재’도 공부거리 1

사문서 위조?


3~4일 일기를 안쓰다 오늘 갑자기 2건을 썼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2건 중 1건을

어제 날짜로 컴퓨터에 입력시키려 하고 있질 않나!

나의 마음이 사문서를 위조하려다 들킨 것이다.

쑥스럽게 웃는다.


“그러지마! 그럴 필요가 뭐 있어?

누가 뭐라고 해? 한 달을 안 쓴다고 누가 뭐라고 해?

하루에 30건을 쓴다고 누가 뭐라고 해?

그것을 아마 보여 주려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가 보지!

그래! 보여 주려면 솔직히 보여주마!

며칠 건너 뛰다 어느 날 여러 건 쓴 것이

정말 솔직히 보여주는 것 아니겠니?”


마음이 편하다.

이렇게 좋을 수가! 이것이 바로 일기의 위력이구나1


-천원택 님



‘일기기재’도 공부거리 2

부끄러움 하나로

내 소중한 경전을 비하할 뻔했다.

(이미경 선생님의 일기를 읽고 나서)



마음공부 연수 이틀 째, 잠자리에 들려고 자리에 누웠다. 내 윗자리에 누우신 두 선생님께서 일기를 보면서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이미경 선생님의 일기를 보면서 감탄하시는 선생님과 이미경 선생님의 대화였다.


‘얼마나 잘 썼을까?’ 순간 궁금했다. “저도 보면 안될까요?” 하면서 일어나니 보라고 하신다. 그래서 이 선생님 일기를 몇 편 읽었다. 완전 감탄의 연발이었다. 한 마음 끝까지 살펴보고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읽고 나서 내 반응이 이러했다. “일기를 안 쓰는 원경고 선생님들(4인방) 마음을 알겠다. 이거보니까 나도 진짜 일기 쓰기 싫다.”


참 우습다. 남이 잘 썼는데 내가 왜 일기 쓰기가 싫단 말인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내 지난 일기를 다시 읽어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일기를 못 썼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거기다 또 오늘 이런 멋진 일기를 보니 내 일기가 더욱 부끄럽고 창피하게 생각되었다. 그 때 쓴 일기는 그 때 내 마음을 그대로 기재한 것이고 그대로 아름다운 것인데····. 마음대조 일기는 요령이 아니다. 정도만큼 나타나는 것이다. 노력한 만큼 깨닫고 깨닫는 대로 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미경 선생님의 일기가 멋있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열심히 마음을 살핀 결과로 그런 훌륭한 일기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내 부끄러움 또한 잘 기재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 마음도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다.


지금 일기를 기재하면서 내가 부끄러움을 못마땅해 했음을 알았다. 부끄러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별성과 주착심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대로 하나씩 깨달아 가는 내가 대견하지 않았던가. 하마터면 부끄러움 하나로 내 소중한 경전을 비하할 뻔했다.


그냥 내 마음만 챙길 뿐이다. 이미경 선생님의 일기로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미경 선생님께 고마움을 느낀다. 감사합니다. 부끄러움에서 감사함으로 마음 변화를 보면서 웃음짓는다.


-김현미 님

‘일기기재’도 공부거리3

일기 감정을 못하겠다.




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는데

얘들의 일기를 읽고 있자면 할 말이 하나도 없다.

이럴 수가!

어떻게든 써보려 하는데 쓰려고 하는 것이 괴로워서

덮어두고 덮어두고 한다.


얘들의 일기를 감정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나를 보는 것과 똑같다.

내가 이렇게 해야한다는 전제가 있으면

그대로 감정을 통해서 얘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섣불리 손을 대서 법이 잘 못 전달될까 두렵다.

법이야 잘 전달되고 못 전달될 것 없지만

왜곡되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싶다.


휴···· 공부·····


-남세진 님

<참고 자료>


1.「원불교 전서」, 원불교출판사, 1989.

2. 전대성,「새인성 교육 마음공부」, 목민사, 2000.

3.  박영훈,「마음공부」, 합천 원경고등학교, 2000.

4. 정동주,「그 마음 덕분에 공부했네.」, 동남풍, 1999.

5. 천원택,「살아있는 그 마음 그것 참 묘하네」, 동남풍,         1996.

6. 월간지「공부심 공부길 공부인」, 1호-35호, 일원전,

7. 황수연,「정기일기법 입문서」,

          (석사학위 논문, 원불교대학원대학교, 1998)

8. 이승미,「내가 응용하는 상시일기법」,

          (석사학위 논문, 원불교대학원대학교, 1998)

9. 홍숙의,「원불교 소개 팜플렛」,

          (석사학위 논문, 원불교대학원대학교, 1998)

10. 박선태,「정전마음공부」소논문.


 

마음을 잘 사용하는 법, 『마음공부』 

엮음∙ 오덕진 

E-mail∙ magic0428@hanmail.net 

원불교대학원대학교